[단편] 잿빛 눈물 제 2장, 작가 : 야쇼우 시게루

원제(原題) : 灰色の涙    작가(作者) : 弥招 栄

원작 링크(原作 リンク): http://ncode.syosetu.com/n2438c/


제 2장 : 인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 미스터께선.”

 카노토는 아라타 단장의 눈치를 보며 내뱉었던 악담을 도로 삼켰다. 그의 손에는 이제 막 읽은 참인 각본과 배역표가 들려있다. 지금 신케키자의 작은 연습장에 있는 것은 아라타와 카노토 두 사람 뿐. 합격 통지가 왔다는 소식에 불려나온 자리였다.

 “뭐야, 기쁘지 않냐?”

 파이프 의자에 앉은 아라타가 카노토를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카노토는 당황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오디션 회장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은 그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왕 찾아온 행운을 무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늘 웃음 띤 표정의 투실투실한 그의 얼굴이 화났을 때에는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카노토 이상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그리 없을 터였다.

 “그럴 리가요. 기쁘죠.”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일단 포기했었던 자리였기에 더욱 기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근데 이 역은 좀 아니지 않나요.”

 “좋은 역이잖아.”

 “너무 좋은 역이잖아요.”

 카노토는 다시 한 번 목록으로 눈길을 돌렸다. 가장 위를 꾸미고 있는 것은 작년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올라 지금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좋을만한 대배우. 이 배역은 영화의 제작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회자되던 일인지라 놀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아래에도 귀에 익은 배우의 이름이 계속 된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가토 타다시 : 콘도 카노토

 출연이 많은 역은 아니었다. 주연과의 인연은 전혀 없다. 하지만 요소요소에 삽입되는 가토 시점의 컷인은 틀림없이 작품 전체의 색을 좌우할 만한 것이었다. 더구나-

 “제 그릇이 아니에요.”

 “흠.”

 아라타가 카노토의 손에서 각본을 뺏어 들곤 펄럭펄럭 넘긴다. 원폭으로 가족을 잃은 청년. 그 슬픔과 분노를 짧은 시간 동안 적은 대사로 표현해야만 한다.

 “뭐. 어울리지는 않지.”

 “그렇죠?”

 “야, 카노토. 네 연기가 지닌 맛이 뭐라고 생각 하냐?”

 에, 하는 얼빠진 소리를 흘리며 카노토는 아라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극계에 들어와서의 경험은 모두 신케키자에서 쌓아온 것이었다. 연극의 기초에서부터 시작해 무대에서의 호흡까지 모든 것을 집어넣어 준 것이 이 아라타였다. 신케키자에서 하는 연극의 각본 및 출연은 물론 TV 드라마나 영화에서까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는 코미디 터치의 경묘한 작풍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극작가 겸 연출가 겸 배우였다. 그 만큼 카노토의 연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깔끔한 대사 조절과 쓸데없을 정도로 높은 긴장감이요. 웃음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빠질 수 없겠죠?”

 “너에겐 그 재능은 없어.”

 “에이, 무슨 말이에요? 제가 나갔다 하면 웃음이 펑펑―”

 “멍청아 그건 네 재주가 아니고 내 연출 덕분이겠지. 야, 카노토. 너 우리 극단 그만둬라.”

 갑작스런 아라타의 말에 카노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한 채 숨을 삼켰다. 마치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무대 탓에 공연의 개봉 일을 하루 미뤄야 하는 듯한 짜증남을 품은 아라타의 시선.

 “넌 좋은 녀석이고 연극에도 진지하게 임하니까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안되겠다.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잠깐…… 단장?”

 “별 수 없으니까 여기서 써먹을 수 있을 데 까지는 써먹으려고 했는데. 뭐 나로서는 그게 최대한의 배려였지만. 아무래도 윌리엄 매니는 너의 다른 면이 보인 모양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각본을 카이토에게 휙 던졌다.

 “뭐 어차피 착각일거라 생각하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이대로라면 결국 이 세계에서 네가 살아갈 길은 없겠지. 지금의 껍질을 깨뜨릴 생각이 없다면 빨리 발을 빼도록 해라. 깨뜨려 볼만한 내용물이 없다면 그야말로 그만두는 편이 좋겠지.”

 그렇게 말한 아라타는 카노토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곤 방에서 나가버렸다.

 카노토의 손에 남은 것은 한 부의 각본 뿐.

 “나쁜 자식!”

 카노토가 걷어 찬 파이프 의자가 벽에 처박히는 소리가 좁은 연습장을 울렸다.

 “못 할 것도 없지! 지켜보라고! 젠장!”




 “잿빛의 비” ~Tears by Fallout~


 1945년.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것은 더 할 나위 없이 분명했다. 이미 본토의 도시는 대부분의 제공권을 상실한 채 B-29에 의한 무차별 폭격에 당하고 있었다. 효과적 반격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던 군부는 일본국 전체를 끝없는 진흙 구렁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7월 26일. 포츠담 회담 합의에 근거한 항복 권고 선언. 그리고 묵살.

 본토 결전. 즉 일억 국민 전체의 최후저항을 고수하는 육군과 종전의 길을 모색하면서도 소극적인 자세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외무성.

 군사 그리고 외교의 전문가들이 이때에 이르러 전쟁의 정세를 착각할 여지는 없었다. 그들의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이대로 종전을 맞이할 때에 천황의 옥체는 어찌될 것인가.

 이 현실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던 것은 옥체 그 자체였던 쇼와 천황 즉 히로히토 바로 그였다.


 영화는 그른 판단이었음을 알면서도 입헌군주로서의 의지를 관철해야만 했던 천황의 마음과 그의 이름을 외치며 죽어간 병사들의 모습, 무차별폭격에 불타버린 국민들에 대한 애도 그리고 그 가운데서 고뇌하는 ‘인간’ 히로히토를 날실로 하고 반복되는 공습에 떨면서도 ‘신국일본(神國日本)’의 승리를 믿고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한 가정의 모습을 씨실로 짜 넣어가며 진행된다.


 아이들의 떠드는 목소리가 울리는 도서관 한 편에서 카노토의 깊은 한 숨이 새어나왔다.

 눈앞의 책상 위로 쌓여있는 것은 영화의 무대가 되는 종전전후의 관련된 이런저런 자료들. 지금 펼쳐 둔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들의 체험담을 모은 것이었다. 그렇기는 한데……

 카노토는 도쿄에 온 후로는 자신이 히로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을 의식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할지언정 히로시마 사투리를 특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던 때나 극단에서 억양을 철저하게 교정 받았을 때 정도였다. 그마저도 딱히 히로시마 사람에 한해서 경험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노토는 피폭자의 체험담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이 슬픈 이야기이고 잔혹한 이야기였기에 읽을 수 없음은 아니었다.

 (흑백 영사기가 투영하고 있는 검게 불타버린 채 쌓인 사람이었던 ‘것’)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채 피부가 벗겨져버린 마네킹.)

 학교에서 그리고 평화 기념관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여주었던 영상과 자료. 전쟁 그리고 핵병기의 공포를 자녀에게 불어넣기 위해 매년 똑같이 반복되어 지던 이름뿐인 평화교육 시간. 그것은 이윽고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눈물 그리고 켈로이드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여름의 어느 날 아침, 울리기가 무섭게 꺼져버렸던 공습경보.)

 (태양조차도 어둡게 느껴질 빛의 덩어리와 폭풍.)

 (가볍게도 휩쓸리고 내팽개쳐지는 신체.)

 피폭자들이 말하는 ‘그 순간’의 기억. 그것은 물론 카노토 자신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들의 체험을 자신의 것으로서 리얼하게 느끼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만 아직 자신의 인격이 완성되기 전에 심어진 공포의 기억. 죽음의 냄새.

 (붕괴된 가옥에 깔린 채 소년의 눈앞에서 불타고 있는 아버지와 형제자매.)

 (손끝에서부터 타들어가 부스러지는 피부를 뒤떨며 유령처럼 배회하는 사람들.)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을 가진 숯덩이.)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벌써 20년이나 지난 일이었는데 금세 떠올릴 수 있는 만화의 묘사. *맨발의 겐.

 ―뭔가가 다른걸.

 카노토는 힘껏 손을 뻗어 머리 위로 기지개를 펴고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라타가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 이유도 잘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카노토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리라. 하지만 깨달음이 곧 극단으로의 복귀 허락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카노토에게 남은 길은 이제 이 영화에 매달려 보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크랭크인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 때까지 가능한 감정이입을 해보려던 것이었는데.

 분명 카노토의 부모는 피폭자였고 그것에 더해 그 자신이 피폭 2세라 일컬어지는 인간이었으며 더구나 히로시마에서 자란 주민으로서 평화교육도 받은바 있다. 아마도 그 오디션 현장에 있던 누구보다도 이 역할을 연기하기 위한 배경은 가지고 있을 터였다. 반대로 배우에 있어서 하물며 프로라면 그러한 배경은 오히려 방해가 되어버리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카노토가 연기하게 된 인물. 가토 타다시. 22세. 히로시마 출생으로 카미야쵸에서 영업 중인 제과점의 견습생. 그는 어린 시절의 사고로 인해 오른쪽 무릎 아래가 절단되어 징병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전장에 투입되는 일이 없었을 뿐으로 그 또한 교외의 군수공장으로 징발되어 그곳의 부역을 하고 있었다. 제과점에 남은 것은 여전히 현역 제빵사였던 장인과 아내인 사에 그리고 갓난아기. 쌀 배급이 수월치 않았던 당시 빵은 밀가루에 밀기울이나 옥수수가루를 섞어 만든 조잡한 것이었지만 그마저도 중요한 식량이었다. 히로시마는 제5사단 사령부등의 중요한 거점이 있었음에도 본격적인 공습을 받은 적이 없어 많은 사람이 유입되어 있었다. 그날도 가토는 가업을 돕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기며 이른 아침부터 공장을 향한다. 그리고…….


 각종 자료나 각본의 묘사의 불러일으키는 이 두려움은 결코 ‘가토‘가 느꼈던 것이 아니었다. 유령이나 괴담에서 느끼는 공포 혹은 어린 아이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과 다름없는 그런 것이었다. 실제가 아닌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공포. 문뜩 카노토는 처음으로 도쿄에서 지냈던 여름을 떠올렸다.

 8월 6일의 아침. 히로시마에서는 모든 채널은 평소의 방송을 멈추고 이른 아침의 평화공원을 비춘다. 숙연하게 진행되는 기념식.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사이렌이 돌연히 울려 퍼진다. 추도하는 사람들. 울음을 참지 못한 채 무너지는 나이든 유족. 몇 십 년의 세월을 지나 되살아나는 분노와 슬픔.

 그 모든 것들이 도쿄에는 없었다. 8월 6일의 아침. TV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사람들이 나오고 평소와 그다지 다름없는 뉴스를 시청한다. 그런 평소와 다름없는 날들 속으로 섞여버렸던 그 날.

 놀란 카노토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 평화교육 받았었지?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원폭 기념일이 언제인지는 알고 있지? 반수가 틀렸다. 그것을 본 카노토는 마음이 편해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역시 이 나라에는 더 이상 전쟁은 없구나. 그것이 조금 기뻤다. 그렇기에 그 후로 여태껏 전쟁 따위는 잊고 살아왔었다. 이 나라는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아아. 미치겠군.”

 카노토는 중얼거리듯 악담을 뱉으며 일어섰다. 아직 읽지 못한 자료를 몇 권 빌려서 도서관을 뒤로 한다.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설령 어떤 결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빌의 한 마디 지적에 의해서 나의 연기 따위는 간단히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아니지…… 이상한 선입견 따위에 물들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연기한다면 조언이라도 해 주지 않을까? 그렇다, 아라타처럼…….

 “이게 아니잖아!”

 카노토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해가 많이 길어졌지만 이미 어둑어둑해진 하늘 아래에 두꺼운 책을 껴안은 채 중얼중얼 혼잣말을 되뇌는 그를 행인들이 피하듯이 지나친다. 그것도 깨닫지 못한 채 카노토는 계속 걸었다.

 (껍질을 깨뜨릴 생각이 없다면 그만두도록 해.)

 아라타의 연출만 따라간다면 뜰 수 있다. 나른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따듯한 이불에 둘러싸여서 꿈의 끝자락을 붙들고 되새김질 하는 듯한 미적지근한 행복.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었다. 평화로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자신.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전쟁의 기억 따위는 기껏해야 악몽과 다름없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금세 잊혀져버리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건 꿈이야.)

 아라타와 처음으로 술을 마셨을 때에 그가 했었던 말.

 (관객들은 말이지 무대를 보고 있을 때에는 현실을 잊는 거야. 아니 우리들이 잊게 만들어야만 해. 극장을 나섰을 때, 아아 꿈을 꿨구나. 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거야.)

 (그렇지만 말이다. 꿈속의 등장인물들은 말이지. 눈을 떠서는 안 돼.)

 (그 녀석에게 있어서 꿈은 곧 세상이니까 말이야.)

 (같이 꿈속에서 살아보자.)

 취기 속에서도 바보 같은 이야기라고 속으로 웃었었다.

 하지만 결국 바보 같은 이야기는 현실이었고 자신은 꿈의 세계도 아닌 망상의 세계에서 살아왔을 뿐이었다.

 카노토는 인파를 피해 골목에 들어서 빌딩 벽에 등을 붙였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었다. 악몽을 현실로서 살아온 사람에게 이어지는 넘버.





*나카자와 케이지 원작의 맨발의 겐『はだしのゲン』(Barefoot Gen)은 지은이 자신의 실제 원폭 피폭체험을 소재로 한 만화이다. 영화 및 애니메이션화 되기도 하였다.


 

(마지막 수정일 20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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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p | 2008/05/04 22:56 | 야쇼우 시게루(弥招 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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