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잿빛 눈물 제 4장, 작가 : 야쇼우 시게루

원제(原題) : 灰色の涙    작가(作者) : 弥招 栄

원작 링크(原作 リンク): http://ncode.syosetu.com/n2438c/



제 4장 : 크랭크 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로케이션 촬영은 미국에서 진행된다. 헐리웃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쇼와 천황의 팀이었기 때문에 카노토가 속한 히로시마 팀의 일정은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뭐야, 헐리웃도 별거 아니잖아. 카노토는 히로시마의 거리를 재현한 거대한 세트장 앞에서 바짝 긴장한 채 아내 사에 역 그리고 장인 겐지 역을 맡은 두 사람과 함께 웃는다.

 ―별게 아닌 게 아니고 별거죠! 미국하고 전쟁하던 시절의 일본 사람들도 이런 기분을 맛본 게 아니었을까요?

 ―아니 그건 아니지 않을까.

 <아내>의 농담을 <장인>이 받아쳤다.

 ―저기 카노토 씨는 어디 근처에 살고 있었어요?

 주변을 둘려보며 <아내>가 물었다. 카노토의 발탁은 그의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출연자와 스태프 사이에서는 그의 발탁 이유가 히로시마 출신의 원폭 2세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퍼져있었다. 카노토 자신도 그것을 숨기지는 않았다. 몇 번인가 미팅이 있은 후 카노토 스스로 빌을 찾아가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빌은 빙그레 웃으며 스크린 너머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그의 미소를 지었을 뿐 대답을 주지는 않았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마을은 이제 다 불타서 없어질 곳인데.

 ―그랬었지!

 꾸임 없이 웃는 <아내>.

 ―젊은 녀석들 하는 짓이 이렇구먼. 사전조사라도 좀 해두는 게 어떤가?

 <장인>의 꾸지람. 일본의 영화계에서는 진득한 조연 역할로 이름을 떨쳤던 그의 일침에 <아내>는 목을 움츠렸다.

 ―그렇지만 제 역할은 서방님을 걱정하면서 열심히 아이를 키웠던 보통 여성이잖아요? 시대가 어떻든 그 마음은 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카노토 씨. 그렇게 말하며 빙그르 돌아 카노토의 눈치를 살피며 빙긋이 웃는 <아내>를 보자 카노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십대 중반에 아이돌로 데뷔하였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 배우의 길로 노선을 옮긴 그녀는 막상 영화계에서는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어 이미 영화의 주연 자리마저 꿰어 찬 경험자였다.

 자신과 비교하여 경험도 실적도 앞선 두 사람이었지만 카노토는 위축되지 않았다. 자신의 연기에 자신이 있다는 이유는 아니다. 이제까지 영화에서는 얼굴만 내밀 정도의 엑스트라 역할 밖에는 맡은 적이 없었다. 그나마 십년 걸려 쌓아온 자신감조차 아라타에게 박살이 나버린 터였다. 다만 이곳은 헐리웃이고 특이함으로 넘치는 거리였으며, 그 두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와 존경하는 장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카노토는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머물며 꿈이라는 이름의 현실에 눈 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액션)


 “삿쨩…….”

 “타다시 씨! 어서 오세요.”

 조명이 꺼진 스튜디오 안. 재현된 카미야 마을에 있는 제과점 앞을 쓸던 <사에>는 <타다시>의 목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광량이 적은 조명이 비춰지고 화장하지 않은 웃음 띤 얼굴위로는 커다란 눈동자가 반짝인다.

 “어르신은 계셔?”

 “응, 계셔요. 안에서 주무시고 있어요. 깨워드려요?”

 “아니. 괜찮아.”

 고개를 갸웃하는 <사에>의 모습에 <타다시>는 쓰윽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 할 말이 있어. 좀 올라가도 될까?”

 그렇게 말하곤 <사에>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왼발을 끌며 가게의 문을 지난다. 카메라가 이동하며 <사에>의 모습을 훑고는 어두운 가게 안을 비춘다. 어색한 자세로 뒤를 돌아보는 <타다시>의 모습을 줌업.

 “삿쨩도……. 미안하지만 같이 와줘.”

 카메라는 그대로 <사에>의 모습을 팬 촬영한다. 의아한 표정을 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리하던 빗자루를 놓아둔 채 그를 따른다.


 (컷)


 다른 세트. 가게 안쪽에서 세 갈래로 땋아 정리했던 머리를 풀며 마루로 올라서는 <사에>.

 “아버지. 타다시 씨가 왔어요. 중요한 말이 있대요.”

 뒤에 선 <타다시>는 눈에 바짝 힘을 준 채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컷)


 “오오. 자넨가. 무슨 일이야?”

 얇은 이불을 덮고 있던 겐지가 그를 맞아 몸을 일으켰다. 카메라가 이번에는 가게 바깥쪽의 낮은 위치부터 영상을 잡는다. 어깨에 이불을 두른 채 책상다리를 하는 <겐지>. 베게 곁에 꿇어앉은 몸빼 차림의 <사에>는 땋아두어서 물결치듯 구부러져버린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등화관제 탓에 갓을 씌워둔 백열등이 그리는 원 끄트머리에 <타다시>가 오른발을 편 채로 앉았다.

 “어르신, 좀 어떠십니까?”

 “뭐 그냥 그렇다네. 요새는 밀가루 질이 안 좋아서 부푸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말은 괜찮다고 하는 <겐지>였지만 실상 그의 얼굴에는 피로의 빛이 짙다.

 “죄송합니다. 제가 기껏 이쪽으로 왔는데도 도와드리지도 못해서…….”

 “그런 말 하지마라. 너야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있지 않냐.”

 <겐지>가 왼손을 뻗자 <사에>가 담뱃대를 건넸다. 배급된 [킨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을 감미하듯 눈을 가늘게 뜬 채 연기를 뱉는 <겐지>.

 “그래서 중요한 일이 뭔가?”

 “예에―”

 잠시 뜸을 들이던 <타다시>는 굽어지지 않는 다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움직여 앉은 자세를 고쳤다.


 (컷)


 아버지를 향한 <사에>의 오른편 뒤에 앉은 <타다시>는 반질한 다다미위로 양손을 모았다.

 “어르신. 저에게 삿쨩을…….”

 한번 말을 끊고 어깨에 힘을 싣는다.

 “사에 씨를 주십시오.”

 머리를 다듬던 <사에>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그녀가 고개가 타다시를 향한다. 하지만 <타다시>의 시선은 오로지 <겐지>를 떠나지 않는다. 천천히 연기를 뿜어내고는 <사에>의 그림자 진 곳으로 재를 턴다. 뻣뻣한 손이 백발성성한 머리를 훑는다.

 “제가 이런 몸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도 못합니다. 이 다리만 굽혀졌더라도 그 사고만 없었더라도 싸울 수 있었을 거라고 항시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 죽어 돌아오는 사람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이런 제가 아내를 얻으려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는 없어도 하다못해 사에 씨……. 삿쨩 만큼은 지키고 싶습니다. 삿쨩을 지키는 것이 저의 첫 싸움이 되리라. 그런 심정입니다.”

 깊게 머리를 숙이는 <타다시>. 카메라는 천천히 돌아서 아직 남은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비는 <겐지>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겐지는 새 담배를 꺼내어 물어보았지만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다시 담뱃갑으로 돌려 넣는다.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눈을 든다.

 “사에야…….”


 (컷)


 <겐지>로부터 <사에>에게 카메라의 포커스가 옮겨간다. 이름을 불린 그녀는 아버지를 한 차례 바라보곤 살며시 <타다시>에게 시선을 주더니만 이윽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렸다.


 (컷)


 촬영은 계속 된다.

 1944년 10월 25일. 레이테 해전. 가미가제 특공대에 의한 공격이 처음으로 행해진 날. <타다시>와 <사에>의 결혼식이 검소하고도 조용하게 치러진다. 얼마 안 되는 배급 술을 마시고서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겐지>가 부르는 박자 틀린 *타가사고 축가가 비라도 내릴 듯한 하늘에 스며든다.

 1945년 3월. 이미 양친을 타계한 <타다시>는 예전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하고 <겐지>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조금씩 불러오는 <사에>의 배에 귀를 대어보는 것이 공장에서 돌아온 <타다시>의 일과이다. 아직 안 움직여요. 그렇게 말하며 웃음 짓는 <사에>. 같은 달 10일, 도쿄 대공습. 같은 달 26일, 이오지마 함락.

 같은 해 6월 25일의 심야. 일이 과했는지 조금 열을 내며 자고 있던 <사에>가 예정일을 채우지 못한 채 돌연 산통을 느꼈다. 소란 속에 모인 부녀회 여성들이 출산 준비에 들어가고 <타다시>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구른다. 환한 보름달 아래에 <겐지>가 피는 담배 연기가 살랑살랑 흔들거린다. 이윽고 서쪽 하늘로 달이 기울고 하늘이 차츰 밝아올 즈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의 증거가 확실한 힘을 담은 채 울려 퍼졌다. 기쁨을 참지 못하는 <타다시>. 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을 붙인 채 <사에>는 아직도 열기를 띈 얼굴 위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문자 그대로 갓난아이가 울고 있다. 조산이었기에 조금은 작은 아기. 26일의 이른 새벽, 장자가 태어난 것이다. 한숨도 자지 못해 지쳐있을 터인 <타다시>도 가슴을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으로 채운 채 일터로 향한다. 그 손에는 처음으로 안은 아기의 무게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같은 날 오키나와 함락.

 같은 해 7월 26일. 미합중국과 영국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3국에 의해 13조에 달하는 항복권고가 작성된다. 이른바 포츠담선언. 그리고 이어진 일본정부의 묵살. 아기를 더한 4인 가족의 **오미야마이리 참배. 축사를 이어지고, 산후 회복도 하지 못한 소박한 토속 옷차림의 <사에>가 <겐지>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 미소 짓고는 <타다시>를 돌아본다. <타다시>는 그의 가족을 어느 정도 사랑스럽게 생각하였을까.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장인에게 아이를 받아 달래는 아내의 어깨를 살포시 보듬는다. 전날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원폭투하의 명령이 이미 내려졌던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6일. 그 날……

 쾌청한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타가사고(高砂) 축가 : 스미요시의 소나무와 타카사고의 소나무가 부부라는 전설을 소재로 하여 천하태평을 축복하는 내용. 혼례 등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흔히 불림

**오미야 마이리(お宮参り) :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수호신을 모신 신사(神社)에 참배함. 흔히, 생후 30일 전후에 함.



(마지막 편집일 : 20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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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p | 2008/05/06 20:18 | 야쇼우 시게루(弥招 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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