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잿빛 눈물 제 5장, 작가 : 야쇼우 시게루

원제(原題) : 灰色の涙    작가(作者) : 弥招 栄

원작 링크(原作 リンク): http://ncode.syosetu.com/n2438c/



제 5장 : 잿빛 눈물



 동원된 학생들과 함께 점호를 받은 타다시는 자신의 선반에 기름을 치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 이미 선반이 쇳가루를 뿌리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약 한 시간 전에 발령된 공습경보 탓에 작업개시가 늦어졌던 것이다. 한 여름의 땡볕 아래 달궈진 공장 건물의 실내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흘러내린다.

 “오늘도 푹푹 찌네요.”

 철근이 든 상자를 옮기던 사내가 타다시에게 말을 건넸다. 아직 얼굴에서 앳된 빛이 가시지 않은 그의 이름은 카와타니라고 한다. 징병유예를 받은 사범학교의 학생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 중에서도 인문계 학생들이 우선 전장으로 보내졌고 남은 이공계 학생들은 이렇게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입 말고 손을 움직여야지. 그러고 있으면 일이 끝나겠니?”

 “말도 말아요. 어제도 공습경보가 떠서 한잠도 못 잤다고요. 잠은 재워줘야 일을 할 것 아닙니까.”

 그를 상대하는 것이 귀찮았던 타다시는 다시 기계를 마주했다. 하지만 카와타니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철근을 작업대 위로 옮기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야 아저씨는 좋겠죠. 돌아가면 형수님도 있으니 빨리 돌아가고 싶기도 하겠네요. 우리는 가볼 데라고 해봤자 숙소이니. 어차피 얼마안가 *빨간 종이가 날라 올 것 같고. 아아, 내 다리도 좀 부러졌으면 좋으련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타다시는 움직이기 시작한 기계를 멈추었다. 한 걸음 카와타니에게 다가선다. 수면 부족과 무더위는 불에 기름을 끼얹듯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불안한 전황에 초조함을 더하고 있었다.

 “나도 병신이었으면 군대에 안 끌려가도 되고 마누라도 얻을 수 있을 거 아니냐고요!”

 “이 새끼가. 다시 한 번 지껄여봐.”

 “어이! 거기 뭐하고 있나!”

 성난 목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사무실 쪽에서 군복을 입은 남자 둘이 타다시와 카와타니를 향해 급히 다가왔다. 카와타니가 칫하며 혀를 찬다. 타다시도 얻어맞을 것을 각오하고 자세를 고쳤다. 그 찰나―

 활짝 열어 두었던 창문 건너편이 눈부신 섬광으로 가득 찼다.


 ―뭐지?

 생각은 말이 되지 못한 채 그저 경악스러운 표정을 만들고,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창문을 향한다. 그 순간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공장이 흔들렸다. 창가 주변의 벽이 안쪽으로 부풀어 오르고 지붕이 뜯겨져 오르기 시작한다. 누구 할 것 없이 손으로 머리를 가린 채 지면에 엎드렸다. 천장이 부서져 떨어지고 먼지가 폭발하듯 피어올라 모든 시야를 덮는다.


 “아저씨! 정신 좀 차려 봐요!”

 “큿, 대체…….”

 타다시는 한 남자의 도움으로 잔해 속에서 끌려나왔다. 여전히 분진으로 가득한 공간 속을 남자의 어깨를 의지하여 밖으로 향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남자가 이끄는 대로 다리를 끌며 걷는다. 회색의 시야 속에 남자의 얼굴만이 붉다.

 “카, 카와타니……”

 카와타니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타다시를 옮긴다. 그의 상처 난 얼굴위로 피가 흐른다.

 타다시는 주변을 둘려보았다. 방금 전까지도 모두와 일하고 있던 공장은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위를 바라보니 천장은 이미 붕괴되어 먼지 너머로 푸른 하늘이 펼쳐진 것이 보였다.

 “이, 이제 괜찮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공습인가? 하지만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사고인가? 연료창고나 탄약고가 폭발한 것일까? 하지만 카와타니는 말이 없다. 돌연 카와타니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제 됐다. 걸을 수 있어.”

 타다시는 카와타니를 밀어냈다. 그러나 밀려난 당사자는 그것에는 신경도 쓰지 못한 채 망연히 하늘만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카와타니?”

 “아저씨……. 저거”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로 카와타니는 하늘을 가리켰다. 뭐냐, 라고 입을 열던 타다시는 카와타니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곤 아연실색 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곳에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모양의 구름이 하늘을 찌르듯이 뭉클뭉클 팽창하고 있었다. 아직 높게 뜨지 않은 햇볕을 받고 있는 구름은 백색과 잿빛으로 색을 바꿔가며 서서히 거대하게 그리고 높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미, 미국의 ― 신형폭탄이다.”

 어디선가 들려온 그 목소리에 타다시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주변을 둘려보곤 숨을 들이 쉬었다. 모든 것이―

 부서져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아저씨. 집에 돌아가요.”

 신음 소리 같은 카와타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신음하는 것은 카와타기가 아니었다. 이곳저곳에 내팽겨져 있는 피범벅이 된 많은 사람들. 그들이 내는 소리였다.

 “카와타니, 너는?”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도울래요.”

 “그럼, 나도―”

 “아저씨! 정신 좀 차려요! 저 방향이 어딘지 안 보이냐고요!”

 카와타니는 다시 한 번 구름을 가리켰다. 그것은 틀림없는 히로시마 거리의 중심부. 타다시의 돌아갈 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사에!”

 주변의 소리가 서서히 신음소리에서 도움을 구하는 소리로,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소리로 변해간다. 공장 안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빠져나온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어제 형님이 돌아왔는데, 나도 언젠가 군대로 끌려가서는 저런 짐짝에 실려 돌아올 거라 생각하니, 여자도 한 번 못 안아보고 죽을 거라 생각하니까 갑자기 무서워져서. 문뜩 아저씨 얼굴을 봤더니 갑자기 질투가 나서―”

 “카와타니―”

 “가요. 어서. 어차피 아저씨 같은 병신이 있어봤자 도움도 안 돼요.”

 카와타니는 말을 마치고는 근처에서 신음하는 사람에게 달려갔다. 괜찮냐! 정신 똑바로 차려! 라고 말을 건네며 일으켜 세운다.

 “미안하다!”

 타다시는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굽혀지지 않는 그의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도록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 전체로 퍼져가는 화재가 비를 부른 것일까. 어깨를 때리듯 내리는 재를 머금은 검은 비가 타다시의 얼굴을 군데군데 물들이기 시작한다. 타다시는 잿빛으로 물드는 세상 속을 걸음조차 떼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인거냐.”


 검게 불타고 부서진 건물들의 파편들이 주변 일대를 덮고 있었다. 철근 콘트리트로 지은 빌딩은 마치 벼락을 맞은 거목이 부서지고 불타오른 듯한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둥근 지붕의 산업장려관이 반파되어 있다.

 “사에…… 사에에에에――!”

 타다시의 외침 소리가 말 없는 세상 속으로 스며든다. 이곳까지 오며 지나쳐온 지옥과도 같은 광경은 이곳에는 없었다. 물을 찾아 신음하며 한 걸음 마다 쓰러져가는 유령의 무리. 얼굴 한 편에 자잘한 유리 조각들을 가득 박은 채 엉엉 울어대는 어린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지키듯 끌어안은 채 숨이 멎은 어머니. 옷은 물론 그 아래의 피부조차도 벗겨져 이미 숨을 쉬지 않는 아이를 내밀며 도움을 구하는 어머니. 길바닥에 주저앉아 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다만 새카만 숯이 되어버린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고 하는 어머니. 그 누구도 사에가 아니었다.

 그렇게 이곳에 있는 남은 것은, 타다시가 지켜야만 했었던 작은 행복을 더해갈 터였던 이곳에 남은 것은 그저 적막뿐이었다.

 비가 떨어지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폐허 속에서 제과점이 있던 장소를 찾아낸 타다시는 손닿는 대로 파편을 치우기 시작했다. 녹아서 형태가 변해버린 기와 조각과 찌부러진 냄비 그리고……

 “으앗”

 주변보다 조금 높이 쌓여졌던 잔해가 타다시에게 무너져 내렸다. 피하지 못한 채 하반신을 깔린 타다시가 발버둥 치듯 몸을 움직여 빠져나온다. 무언가 벽돌로 쌓아올린 것의 형태가 드러났다.

 “이건―”

 서둘러 파내어 검게 그을린 표면을 문지른다. 비에 젖었는데도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아 뜨겁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잔해와 고기가 타는 냄새에 섞여 살포시 풍기는 향기. 그것은 겐지가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겨온 빵을 굽는 가마였다. 타다시는 무아의 상태가 된 채 잔해를 파헤치는 일에 더욱 몰두한다. 유리와 쇳조각들이 얼굴을 팔을 손을 찢어간다.

 “괜찮아. 괜찮고말고. 네가 여기 있을 리가 없어. 벌써 어딘가로 도망쳐서 무사하잖아. 당연하지. 이런, 이런 곳에 네가 있을까보냐―”

 그 때였다. 별안간 타다시가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엉거주춤하게 일어선다. 한 순간이라기에는 긴 시간. 본래 있어야할 풍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진다.

 아침 햇살이 반쯤 비쳐오는 밝은 가게 안. 목에 건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가마의 불을 살펴보는 타다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슴에 안은 아이에게 “아가야, 빵 냄새 좋지?” 라고 이야기하며 웃음 짓는 사에.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겐지. 하지만 그런 행복한 나날은 천천히 천천히 빛에 감싸이곤―

 “사에에에에!”

 잔해 속에 하반신을 묻은 채 얼굴만이 타다시를 향하고는 있는 숯덩이.

 그 가슴팍에 작은 덩어리를 안고 있다.

 “아…… 아아”

 타다시는 그 곁에 꿇어앉은 채 손을 뻗어 커다란 덩어리를 ―변해버린 아내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매끄러운 검은 머리카락의 감촉대신 느껴지는 까칠함. 관계치 않고 그대로 몸으로 손을 뻗는다. 몸 아래로 손을 넣어 꿇어앉은 채 그것을 안아 올린다. 부스럭부스럭 표면이 떨어져나간다. 하지만 큰 덩어리는 결코 작은 덩어리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타다시는 그 두 개의 덩어리를 ― 아내와 아들을 끌어안은 채 얼굴을 파묻었다.

 그 어깨를 하염없이 비가 친다. 점차 씻기기 시작한 하늘에서는 격해짐과 함께 투명해져가는 비가 대지를 차별 없이 다독이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고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폐허를 아련하게 덮어 간다.

 “어째서야”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리는 타다시의 목소리가 낮게 울린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사에, 나는 너를 지키겠다고 맹세했잖아. 너를 위해 싸우겠다고…….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너는, 너는 이렇게 아기를 지키고 있었는데도”

 부드러운 포대기에 쌓여있을 터인, 손대면 가장 좋은 빵보다도 부드러웠던 작고 검은 덩어리를 더러운 손으로 보듬어 안는다. 사에의 가느다란 팔은 그것을 꼭 끌어안은 채 결코 놓으려 하지 않는다.

 “사에, 내가 항상 무슨 생각을 한줄 아니? 언젠가 전쟁이 끝나서 다시 빵을 구울 수 있게 된다면 너와 아이에게 배불리 먹여주겠다고 말이야. 전쟁에도 나갈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싸움은 그게 전부였는데. 그런데도…….”

 타다시는 고개를 들었다. 가슴 속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하늘을 노려본다.

 “어째서, 어째서 그만한 일 조차 허락하지 않는 거요!”

 때를 맞추듯 잠시 비가 멎는다. 보잘 것 없는 햇살이 비쳐온다. 그렇지만.

 두 명의 가족의 파편으로 검게 물든 그의 얼굴을 눈물이 멈추지 않고 씻어 내려간다. 턱에서 한 방울 또 한 방울 떨어지는 잿빛의 눈물.


 [컷]


 조용하던 스튜디오에 감독 빌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장감을 만들기 위해 비를 뿌리던 강수기가 멈춘다.

 “이거로 히로시마 팀의 촬영은 전부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빌의 옆에서 통역을 하는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스태프들이 일제히 치는 박수가 폭풍처럼 밀려온다.

 카노토는 멍하게 주변을 둘려보았다. 주변은 실제로 파기 위해 만들어진 폐허 이외에는 나중에 CG로 합성하기 때문에 파란 백스크린으로 쌓여 있다. 성큼성큼 걸어온 빌이 웃으며 카노토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그를 일으켜 세운다. 도구 팀이 일제히 세트의 철거를 시작한다. 아직 젊은 스태프 한 명이 카노토가 끌어안고 있던 검게 탄 인형을 받아들려고 손을 내민다.

 “아―”

 카노토는 순간 그 손을 뿌리치고 빌을 붙들었다.

 "잇 워즈 올레디 디 오버 유 노?"

 이제 끝났어. 그렇게 말하며 카노토의 등을 세게 두드린 빌은 다시 성큼성큼 걸어 돌아갔다.

 “수고하셨어요. ―응? 왜 그래요, 카노토 씨. 멍해가지고는.”

 “오늘은 마시러 갈 거니까 어서 와라.”

 카노토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제 이미 모든 촬영을 마친 두 사람의 출연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물론 분장도 하지 않았고 의상도 입고 있지 않다. 청바지와 어울리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방금까지 가족이었던 두 사람.

 “아, ……그게”

 멈추었던 눈물이, 결코 연기가 아니었던 눈물이 다시 한 번 쏟아진다. 눈물 너머로 보이는 두 사람에게 사에와 겐지의 모습이 포개진다.

 ―꿈을, 꾸었습니다. 아라타 씨― 단장. 저는 확실히 꿈속에서 살아있었습니다.

 카노토는 검은 잉크를 옅게 풀었던 비에 젖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두 사람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금방 갈아입고 갈게요.”




 

*전쟁 당시 육군 병사를 소집하기 위해 발송된 징집영장이 붉은 색임에 유래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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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p | 2008/05/07 21:23 | 야쇼우 시게루(弥招 栄)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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