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8일
[단편] 잿빛 눈물 최종장, 작가 : 야쇼우 시게루
원제(原題) : 灰色の涙 작가(作者) : 弥招 栄
원작 링크(原作 リンク): http://ncode.syosetu.com/n2438c/
그 후 한 달이 못되어 쇼와 천황의 팀도 크랭크 업을 맞이하여 감독 지휘 아래 편집을 거듭한 영화는 무사히 시사회를 마칠 수 있었다. 2부작의 전편인 백악관을 그린 작품은 이미 공개되어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잿빛 눈물”은 전편을 넘어서는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12월 초순, 일본에서 우선 개봉하여 같은 해 미국 개봉. 그와 동시에 수상 후보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작품상 그리고 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 미술상 등.
그 중에서 남우조연상으로 카노토의 이름도 있었다. 일본 국내의 매스컴도 히로히토 역의 배우 다음으로 카노토를 호평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노토의 대한 기대는 전초전으로 불리는 영화 시상식에서의 수상을 놓치고, 본상에서는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하자 급속히 식어버렸지만 그것은 연극계에서의 카노토의 평가를 높이는 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
영화자체도 결국 촬영상 하나를 얻는 것에 그쳤지만 흥행성적은 한동안 국내 랭크를 독주했다. 카노토에게도 영화, 무대, TV를 가리지 않고 출연 제의가 들어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연장한 신케키자를 거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오사카로 옮겨가는 날과 함께 생긴 휴일. 카노토는 문뜩 마음이 동해서 히로시마 역에서 내렸다. 히로시마 역 빌딩인 ASSE에서 좋아했던 구이요리를 먹은 카노토는 출발하려고 하는 노면 전철을 행선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올라탔다. ―아, 히로시마 항구 행인가. 이 전철은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원폭 돔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 노선이었다. 뭐 나쁘지 않지. 이대로 타고가면 카노토가 태어나고 자랐던 동네 근처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카노토는 도중 히지산 아래의 정거장에서 전철을 내렸다.
꽤 변했네. 분명 이 근처에 친구가 한 명 살고 있었지―
번잡해진 일상에 지친 마음을 치유하듯 히지산 공원으로 걸음을 옮겨 그대로 산의 반대 측으로 내려온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생겼구나. 산기슭에 자리 잡은 복합형 쇼핑센터를 들려본다. 흠. 멀티플렉스 영화관까지 생긴 건가.
그곳에서는 아직 “잿빛 눈물”의 상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문뜩 변덕이 생긴 카노토는 표를 구입해 상영관으로 들어섰다. 개봉일로부터 꽤 지났고 시간도 평일 오전이었기에 결코 넓지 않은 객석에는 셀 수 있을 만큼의 사람 밖에는 없었다. 카노토는 한 가운데 즈음에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보는 화면으로 시선을 향했다.
영화는 초반이 끝나가는 레이테 해전의 장면이었다. 미군 함을 향해 일본 전투기들이 공격한다. 전함과 전투기들이 화염 속에 말려드는 장면에서 조금 떨어진 좌석에 앉은 한 젊은 남자가 굉장한데, 멋지군 하며 소리를 높였다. 카노토도 그 기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박력이 있는 장면이기 때문에.
장면이 바뀌어 전황의 보고를 받은 쇼화 천황의 고뇌에 빠진 얼굴. 가장 앞에 앉은 중년 여성 두 사람이 어머- 하고 작은 소리를 낸다. 히로히토 역을 맡은 배우의 팬인 모양이다. 그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는 팝콘을 먹으며 서로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했다.
이것이 지금이 일본인가…….
카노토는 문뜩 떠올렸다. 전쟁도 사람의 죽음도 고뇌도 평화로운 생활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어차피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로서 만들어버린 자들 중에는 다름 아닌 카토노 자신도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둥 아래에서 기어 나왔을 때에는 이미 주변이 불타고 있었다. 구해달라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도망칠 수밖에는 없었어. 그 안에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누님의 목소리도 섞여있을 터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털썩 털썩 죽어가는 모습이 무서웠어, 처참하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도 구워지는 모습마저도 보았지만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밤에 잘 수도 없었다. 아예 그 날 어머니와 함께 죽었다면 이렇게 괴로운 마음으로 살진 않았을 거라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피폭자라고 하면 병이라도 걸렸다는 듯이 제대로 된 일도 주지 않아서 정말로 왜 살아야 하는 지도 몰랐을 때, 너희 엄마를 만났다. 원폭을 맞고 나서 처음으로 살아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지.)
아버지의 편지를 읽었을 때에 느꼈던 감정은 결국 나의 연기 속에 담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상 영화를 볼 마음이 들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을 때 훌쩍하며 코를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앞 스크린에 비치는 것은 히로시마의 거리를 두 사람이 걷는 평범한 장면. 그런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앞 쪽으로 몇 칸 너머에 앉아 있는 헌팅캡을 쓴 노인이었다. 전쟁 전의 히로시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 것일까. 특히 히로시마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뚫어질 듯 스크린을 바라보고 때때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왼팔에는 어두움 속에서도 쉬이 알 수 있는 채찍으로 맞은 듯한 자국이…….
저건 켈로이드잖아…… 아버지?
틀림없었다. 카노토가 배우가 되겠다는 것을 딴따라라고 비하하고 욕하며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카노토가 출연한 영화를 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 두려웠다. 그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두려움이었지. 피폭당한 사람의 아이는 절름발이가 태어난다고들 모두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 엄마는 그래도 아이를 갖기 원했던 거야.)
(나도 너희 엄마도 피폭자였기에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지. 그 와중에 자립 할 수 없는 아이를 낳는 다니 힘들지 않겠냐는 말도 들었다.)
(나도 너희 엄마도 친인척은 모두 원폭으로 죽었었지. 전쟁 통을 인내하고 살아왔건만 결국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정체도 모른 채 불타 죽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줄 아이를 원한다고, 네 엄마는 그리 말했었다.)
(네 이름은 말이다. 이루지 못했던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길 바라며 지은 이름인 게다.)
“아버지…….”
영화가 끝났다. 상영관에 조명이 돌아온다. 카노토는 눈물을 닦고 있는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안심해요. 아버지. 나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배우로서는 아직 여물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쇼핑센터를 내려오며 많은 사람이 쇼핑을 즐기는 점내를 둘러본다. 언제라도 볼 수 있는 평화로운 광경.
잊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꿈에 현실을 입힐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어머니의 이 평화를 목숨을 걸고 남겨준 사람들의 덕분이라는 것을.
출입구를 지나 건물을 빠져나왔다. 양손을 뻗어 크게 기지개를 펴본다. 카노토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 돌아왔다고, 히로시마의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그렇게 실감했다.
술이라도 한 병 사들고 가서 오랜만에 집에서 자보기로 할까.
현관 앞에서 서성이는 자신을 발견한 아버지의 표정이 어떨지를 생각하고 웃음 짓는다.
하늘은 평소와 다름없이 쾌청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fin)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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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습니다.
“원폭을 투하한 시점에서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가능했지. 만약 그 결정이 없었다면 오히려 백만을 넘는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네. ―”
마침 글을 연재하던 중에 큐우마 후미오 방위상과 미국의 고관의 회담에서 이와 비슷한 발언이 나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당연한 것처럼 들리는 이 표현은 실상 원폭을 개발하고 용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흘린 말에 불과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표현에 대한 대사를 카노토에게 시키기 위해서 그 말을 일부러 사용했습니다. 집필하던 중에는 설마 이런 말을 한 나라의 요직에 있는 사람이 입에 담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원폭이 투하된 이유. 그것은 이렇게 적당한 이유로서 꾸밀만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참고자료를 실으려고도 생각했습니다만 적당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디 여러분께서 원폭이 투하된 이유에 대해여 여러 자료를 검색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말에서도 썼듯이 이 작품은 “미치노쿠 예능 축제 불꽃대회”를 위해 쓰인 것입니다. 작중에서 원폭을 “피카”라고 기재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제가 어린 시절에는 “피카돈”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맨발의 겐”에 나왔었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번쩍하는 섬광이 빛나고 그 위로 쾅하는 충격파가 오기 때문에, 피카돈. 생각해보자면 불꽃놀이도 그렇습니다. 우선 번쩍하며 색색의 불꽃과 빛이 번지고 펑하는 몸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죠. 같은 “피카돈”이라면 세계의 하늘에 퍼질 것이 핵의 화염이 아닌 아름다운 불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깊이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맺음말까지 함께해주신 분들과 평화의 기원하는 분들 그리고 그 몸을 희생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남겨준 모든 분들에게 백만의 감사를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 by | 2008/05/08 21:50 | 야쇼우 시게루(弥招 栄)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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